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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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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부지>에서 나온 대구읍성과 사진단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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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시 기념물 제16호

    사직단

    • 있는곳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4동 1314번지 일대
    • 지정일

      2006. 04. 20

사직단은

평리4동 1314번지 일대, 즉 새 주소 사업으로 부여된 사직당1길 ~ 사직당9길이라는 도로 푯말이 있는 곳, 평리푸르지오 아파트 후문 부근 언덕배기에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대구의 사직단이 있었다. 사직은 백성의 복을 위해 제사하는 국토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백성은 땅과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으므로 사직은 흉풍(凶豊)과 국가의 운명을 관장한다고 믿어, 나라를 창건하면 제일 먼저 왕가의 선조를 받드는 종묘(宗廟)와 더불어 사직단을 지어서 백성을 위하여 복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을 종묘사직이 망한다는 말로 비유할 만큼 종묘와 사직은 국가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대구에는 평리동과 현풍, 경산 등 세 곳에 사직단이 있었다.
이 중에서 평리동의 사직단에 관한 기록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와 『여지도서(餘地圖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대구읍지(大邱邑誌)』등에 보인다. 이 중에서 순조 32년)1832)에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의 대구부(大邱府)> 기록이 가장 상세한데, 在府西七里坪山(재부서칠리평산), 設齋舍使僧守護(설재사시승수호), 神室壬子創建(신실임자창건)이라 하여, 사직단은 대구부(현 경상감영공원)에서 서쪽 7리(2.8km) 되는 평산(坪山)에 있으며, 거기에 재사(齋舍)를 짓고 스님으로 하여금 수호토록 했고, 임자년에는 신실을 창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사직단에는 사직단 외에 재사와 신실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규모나 모습은 알 수 없다. 또 임자년에 창건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사직단은『경상도읍지』가 편찬된 순조32년(1832) 이전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순조 32년 바로 앞의 임자년인 정조 16년(1772)에 건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경상감영이 임진왜란(1592) 이후 대구에 설치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사직단의 건축 연대는 1712년 또는 16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현풍의 사직단은 조선 초기 3대 현풍현감인 채석견(蔡石堅)이 현풍현 서쪽에 사직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왔는데, 일제 강점기에 허물어지고 해방 후 그 자리에 충혼탑이 들어선 사직산(社稷山)이 있다. 인근 동산(상리동산)에 1997년 사직단을 복원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산 사직단은 1998년 수성구 노변동 대구농고 남쪽 구릉에 도로를 개설할 때 발굴되었으며 대구시는 2006년 4월 20일에 사직단을 대구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하였다.